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2018 서울국제음악제

이전상품 다음 제품 보기 확대보기
추천메일 보내기 상품조르기 대량구매문의

끌로드 드뷔시
C.Debussy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끌로드 드뷔시
C.Debussy
연주자 : C.Debussy
수량 : 수량증가수량감소
SNS 상품홍보

개인결제창을 통한 결제 시 네이버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합니다.

상품 옵션

(최소주문수량 1개 이상 / 최대주문수량 0개 이하)

수량을 선택해주세요.

위 옵션선택 박스를 선택하시면 아래에 상품이 추가됩니다.

상품 목록
상품명 상품수 가격
끌로드 드뷔시
C.Debussy
수량증가 수량감소 0 (  )
= 0 (0개)
드뷔시, 끌로드 Debussy, Claude Acchille (1862~1918)
 

드뷔시는 프랑스가 낳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음악가이자 인상파 음악의 창시자이다. 회화에서 시작하여 외부로부터 받은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한 인상파 예술은 표현의 예술이 아닌 인상의 예술이었으며 이는 프랑스적 서정성을 겸비한 드뷔시라는 한 천재 작곡가에 의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음악으로 태어났다.
도자기 상회를 경영하던 드뷔시의 아버지는 그를 해군에 보내려 했으나 어린 드뷔시의 놀라운 피아노 연주를 들은 모테 부인의 권유로 드뷔시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파리 음악원 입학하여 11년간 그곳에서 공부하게 된다. 파리 음악원 재학시절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인 메크 부인의 초청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 여행을 통해 러시아 국민악파의 음악과 집시의 즉흥 연주를 듣고 여태까지 그가 접해왔던 음악들과는 조금 색다른 이 음악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1884년 칸타타 ‘방탕한 아들’을 출품하여 작곡가 최고의 명예인 로마 대상에서 1위를 거머쥐고 이로 인해 드뷔시는 로마유학 길에 오른다. 하지만 로마 생활은 드뷔시에게 무척이나 무료한 시간이었으며, 이때 의무적으로 작곡한 몇 개의 작품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렇듯 지루했던 로마 생활을 접고 시작한 파리 생활이야 말로 드뷔시에게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파리에서는 시인과 화가들이 매일 밤 말라르메의 집에 모여 새로운 예술을 토론했으며 항상 ‘새로운’ 것에 매료되었던 드뷔시는 창작열에 불탔다.
처음에는 바그너, 후에는 무소르그스키를 대단히 숭배했으며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자바와 캄보디아 등의 동양음악을 접하고 이국적 정서에도 눈을 뜨게 된다. 이렇듯 파격과 새로움을 흡수한 드뷔시는 이를 그의 천부적 재능에 결합시켜 마침내 지금까지의 음악처럼 선율과 화성, 리듬에 의한 정연한 형식의 음악을 버리고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새로운 감각을 위해서는 새로운 조성이 필수적이었으며 이를 위해 드뷔시는 다양한 음계와 더불어 대담한 화성을 사용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요작품으로 ‘녹턴’, ‘3개의 교향적 스케치’, 피아노를 위한 ‘영상’, ‘바다’, ‘어린이의 세계’, 현악 4중주 등이 있으며 특히 1894년 완성한 말라르메 시에 의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독특한 화성과 양식으로 바그너 이후 가장 새로운 음악의 시작을 알렸으며 1902년 초연된 오페라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는 드뷔시 성숙기의 위대한 걸작이다.
'우리 세대에 속하는 모든 음악가들은 드뷔시에게 가장 많은 빚을 졌다'라는 스트라빈스키의 말처럼 항상 새로움을 가지고 전통에 도전하여 독특한 음악세계를 만들어낸 드뷔시는 그가 그토록 사랑한 파리가 폭격의 중심에 놓여있던 1918년 사망하였다.
 

Debussy i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composers of the 20th century and the creator of the impressionist music. The art of impressionism, which captures an instant impression from external sources such as painting, was not intended for expressions but for impressions. Such idea was also incorporated into special and unprecedented kind of music pieces by the genius composer named Debussy, who combined the French lyricism.
Debussy’s father, who owned a ceramic trading company, wanted to send his son to the Navy. But due to the suggestion from Marie Mauté de Fleurville, who heard Debussy’s remarkable piano performance, Debussy entered the Paris Conservatoire at the young age of 11, where he studied at for 11 years. While a student there, he was invited by Nadezhda Von Meck, the patroness of Tchaikovsky, to go to Moscow. It is said that when he listened to the music of Russian Nationalist School and the Gypsy improvisations, the performances interested him because their musical styles differed from those he had experienced before.
In 1884, he published his Cantata “L'Enfant prodigue” and won Prix de Rome, which was the most honorable prize for composers. This helped his studies in Rome afterwards. However, the stay in Rome was very wearisome for Debussy and the few works he composed during this time as a requirement were not well received. After the tiring stay in Rome, he went back to Paris and the city opened doors for the new worlds of his creation. In Paris, poets and painters gathered together every night in S. Mallarme’s house to discuss new art. Debussy was always attracted by “new” things and was burning with the desire to create.
He highly praised Wagner at first and later Mussorgsky. During Exposition Universelle, he encountered Eastern music such as Javanese or Cambodian music. He began to have his eyes open to exotic sentiments. He absorbed these unconventional and new elements and combined them with his natural talents. He eventually did away with systematic musical styles previously dominated by melodies, harmonies, and rhythms. He instead started to develop his own compositional styles.
New keys (or harmonies) were necessary to employ new kinds of feelings. Thus, he began to use various kinds of scales and bold harmonies in many of his works. His major works include “Nocturne”, “Three Symphonic Sketches”, “Image”, ”La Mer”, and “Children’s Corner” for piano, and string quartets. His “Prèlude á l'après-midi d'un faune”, completed in 1894 based on the poem by Mallarme, announced the beginning of new music (since Wagner) with the use of special harmonies and forms. His “Pellèas et Mèlisande” is a masterpiece written in his maturity of compositions.
Debussy created a realm of his own musical world by challenging tradition and attempting to use unprecedented and new ways. Stravinsky once said, “The musicians of my generation and I myself, owe the most to Debussy”. He died in 1918, when Paris, the city he loved, was in the center of ruins. 




Review / 공연후기를 적어주세요.

게시물이 없습니다

후기 쓰기 모두 보기

Q&A / 상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해결해 드립니다.

게시물이 없습니다

문의하기 모두 보기